폐소공포증

중국 출장 중 느낀 점에 대한 짧은 글

6/1/2025, 11:55:00 PM

지난 일주일간 중국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6일 동안 광저우부터 북경까지 5개의 도시를 날아다니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고된 출장이었죠.

하루하루 지나며 누적되는 피로에 무거워지는 발걸음만큼이나

제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골머리를 앓으며 열심히 풀어보려 했던 문제들이

중국에서는 이미 모두 해결되어 있었거든요.

생활 영역 전반에 걸쳐서 IT 서비스가 깊숙이 침투해 있었고

그 규모와 수준도 상당했습니다.

상상했던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였습니다.

중국은 항상 우리나라의 기술을 훔쳐 간다고,

빼앗고 베끼며 위협적으로 우리를 추격한다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중국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나요?

왜 저는 이곳에서 미래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거죠?

도대체 언제부터 제가 우물 안에 있었던 건가요?


한국에 돌아와서 처가 식구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우물 밖을 보고 온 개구리가 되어

한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가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 보니

처형이 한마디 하더군요.

“한국에 있다가 폐소공포증 걸리겠어”

이 표현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아무런 폐쇄감도 느끼지 않고 살아갑니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지구촌의 주민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자신이 여전히 우물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우물은 내가 가진 식견의 크기만큼 언제나 존재합니다.

나의 편협함을 잊지 않기 위해 항상 두려운 마음을,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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