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

세계를 이해한 뒤에도 삶을 긍정하기 위해

10/26/2026, 8:30:00 PM

아주 어린 시절 어떤 여름날 일요일의 늦은 아침. 아무도 깨우지 않았지만 스르륵 눈이 떠진다. 어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영문을 모른 채 새로운 세상을 감각한다. 창밖에는 여름 햇빛에 이미 온통 환해진 나무와 풀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 밝음이 창을 조심스레 넘어 방 안의 공기를 데운다. 희미하게 들리는 거실의 TV 소리가 엄마의 손길처럼 포근하다. 아무런 걱정도 기대도 없이 순수하게 시작되는 하루. 기상보다 탄생에 가까운 순간.


요즘 나는 이때의 감각이 너무나도 그립다. 매일 아침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첫 숨을 들이쉬기도 전에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의 부담감, 오늘의 책임감이 무겁게 나를 누른다. 언젠가부터 이루고 싶은 게 없어졌다. 삶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무언가가 없다고 느껴졌고 그 끝에 존재하는 죽음만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애써 무언가를 추구하려 해도 그 의지를 무참히 뒤흔드는 부조리함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 무게를 이겨보려 많은 이야기와 철학을 접했고 많은 글을 썼다. 대부분은 실존에 대한 고찰이었다. 세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파악되기 시작했고 그 이해를 기반으로 내가 견지해야 하는 태도를 체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실패에도 괴로웠으며 사소한 운명도 버거웠다. 머리로는 대부분의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그 앞에서 무너졌다. 나는 극복하지 못한 채로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매일 아침 세상을 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던 그 어린 시절 나는 철학을 몰랐다. 온갖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느끼는 것은 지적 활동의 결과가 아니다. 본래 태어날 때부터 육체에 새겨져 있던 것이다. 어째서인지 어른이 된 나는 삶을 긍정하기 위한 철학을 이해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전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육체는 닳았으며 머리는 굵어졌다. 철학이 그저 지적인 생산물로 활용되고 있을 뿐 체화되지 않고 있다.


나는 내 육체에 원래 지니고 있던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잃어버렸고 이제 다시 어렵게 되찾으려 하고 있다. 생각이란 게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탓에, 이미 수많은 생각에 절여진 나는 아마도 다시 순수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무지의 상태에서 내 육체에 존재했으나 닳아버린 태도를 이제는 의식적으로 새겨 넣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에 집중하자. 어딘가에 도달하려하지 말고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를 고민하자. 허무를 이기는 긍정의 철학을 꾸준히 체화하다 보면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도 한바탕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여름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반가워지는 순간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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