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각을 정리하는 노트앱 제작기(3)

직접 만든 노트앱을 출시하면서의 소감

2/22/2025, 12:08:00 AM

애플의 앱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지루한 과정에 고통받고 있던 어느 날, 와이프가 지금 내 모습과 똑같다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하나 보여주었다.

그 그림 속에는 잠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앉아 코딩을 하는 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zine-my-img

와이프는 올해 들어 꾸준히 Zine 을 만들고 있는데, 지난 1월에 만든 Zine 들을 한데 모아 실로 엮는 작업을 하다가 이를 발견한 것이다.

Zine 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직접 만드는 얇은 책자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Zine을 만드는 행위에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에서 기인하는 복잡한 철학적 태도가 녹아있는 듯하다. ​


한달동안의 Zine 작업물을 모두 엮으니 두꺼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Zine 하나하나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매 순간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이, 이 책을 통해서는 아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그 Zine 들이 만들어지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그것들이 축적된 결과물이 주는 인상은 전혀 친근하지 않았다.

A4 용지 한 장으로 만들어진 작은 Zine 에서 느껴지던 자유로움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오랜 시간을 수행한 순례자의 발바닥을 보는 기분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와 이걸 어떻게 했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zine-all-img

이처럼 꽤 많은 경우 성취의 비결은 특별한 방법론이 있기보다는 단순하게도 꾸준한 노력인 경우가 많다.

내 친구 중의 한 명은 개발자가 아닌데도 혼자 앱 개발, 서버 개발을 모두 독학하여 그를 통해 사업까지 진행했었다.

나는 스스로 개발하여 창업하는 꿈을 꾸는 여러 현업 개발자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장황한 비결을 기대했지만, 친구의 대답은 짧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참으로 우문현답이었다.

“그냥 하다 보니 된 거지”


이 짧은 일화를 통해 나는 하나의 신념을 얻게 되었다.

무엇이든 계속 노력하다 보면 도달하게 된다는 믿음이다.

특히 여기에서 방점은 ‘계속되는 노력’ 보다는 ‘도달하게 된다’ 에 찍혀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 목표에 도전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노력의 시간이 굉장히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어떤 때에는 도대체 어떤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지레 ‘정말 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포기하게 된다.


그럴때 나는 그냥 첫발을 딛는다.

일단 한 걸음 나아가면 다음 할 일을 알게 된다.

나는 이 한 발이 나중에 보면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위대한 것들이 이처럼 작은 한 발로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머나먼 곳에 도달한다는 것.

이 작은 한 걸음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


그동안 만들던 노트앱을 드디어 앱스토어에 출시했다.

와이프의 그림으로 박제된 모습처럼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퇴근 이후에 침대에 앉아 조금씩 앱을 개발해나갔다.

이번 프로젝트의 개인적인 목표는 정식으로 출시를 해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토이 프로젝트를 여러 건 진행했고 그 중 몇 개는 오픈 소스로 공개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사용자에 대한 책임감이 없이 진행하다 보니 적당히 만족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흥미를 잃고 유기하는 일이 많았다.

어떤 종류의 경험들은 끝까지 가봐야지만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나는 서비스 또는 앱을 출시하는 것도 그러한 종류라고 생각했다.

출시를 목표로 하고 나니, 스스로에게 훨씬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게 되었다.

특히 UX 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기능 자체는 MVP 에서 구현했던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UX는 상당히 좋아졌다.

노트앱 스크린샷

또 애플 생태계의 보안 요구사항을 충족한다거나, 데이터 활용과 수익화를 위한 법적 절차를 준비한다거나, 마케팅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등 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허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결국 제대로 출시를 하기 위해서는, 정말 재미없는 일들을 잔뜩 해야 한다. 돌아보면 MVP 를 만들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지금도 정말 재미없는 일 한 가지를 미루고 있는데, 그것은 마케팅이다.(누군가에겐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겠지..?)

AI가 만들어준 아이콘과 대충 만든 스크린샷이 현재 앱스토어에 올라간 전부이다. 대대적인 마케팅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앱을 포장하여 주변에 알리는 것까지가 이 프로젝트의 완성이다.


최근에는 여러 방면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와 그를 위한 에너지 모두 충만하다고 스스로 느껴진다. 이 노트앱을 만드는 데에 출시를 준비하는 것 이외에 개발 적으로도 여러 새로운 도전을 많이 시도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출시 링크를 첨부하면서 글을 마친다.

아참, 이 앱의 이름은 Scathr 이다!

https://apps.apple.com/us/app/scathr/id6742077193?l=ko&mt=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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