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책
1/1/2025, 7:08:00 AM
신혼여행에서의 일이다.
짧은 결혼 준비 기간 탓에 신혼 여행 계획이 미흡했고,
대표적인 투어 몇개와 숙소 정도만 예약해두고서는 여행길에 올랐다.
공항 서점에서 호주 투어 가이드 책을 한 권 샀으나
대충 중요한 관광 포인트 몇 개를 체크하고는 덮어버렸다.
결혼 직후의 신체적 피곤함과 심리적 충만함으로 인한 결과였다.
이 날도 우리는 대책없이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지난 투어에서 만난 가이드가 알려준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멜버른의 하드웨어 레인에 위치한 ‘맥스 온 하드웨어’ 라는 식당이었는데,
캥거루 스테이크를 먹어볼 수 있다는 말에 끌렸으나 정작 우리를 매혹한 것은 하드웨어 레인 그 자체였다.
근대 유럽풍의 건물들 사이로 난 거리를 빼곡히 매운 식당들과 야외 테이블.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분위기 있는 라이브 음악에 홀린듯이 빨려들어갔다.
‘맥스 온 하드웨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식당들에 자리가 없었으나
이미 우리에게 어떤 음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식당 문을 두드렸고,
결국 근사한 자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거리에 와이프와 함께 앉으니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러나, 가슴 먹먹해질 정도로 속을 가득 채우는 행복감이 어색했던 걸까
나는 빠르게 이 행복감을 허무로 치환하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하며 살아가다보면 간신히 도달할 것 같았던 참된 행복을,
우연히 찾아온 이 하드웨어 레인에서 길바닥의 동전처럼 주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아둥바둥 살고 있나?’ 하는 식의 생각에 휩싸인 것이다.
이 꿈 같은 시간 속에서 내가 고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모두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혼자 자는게 무서워 안방으로 도망쳐온 아이처럼,
내 앞에서 또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이프에게 이러한 두려움을 두서없이 쏟아내다가
거의 그 순간을 망쳐버리기 직전에야 정신을 차렸다.
신혼 여행이 끝나고도 오래도록 하드웨어 레인에서 잃어버린 내 삶의 의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은 길치인 내가 아주 잘 아는 감각이다.
나는 지금 길을 잃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다면 곧바로 지도 앱을 열 것이다.
비슷하게도 불현듯 떠오른 책이 있었다.
아무리 거대한 혼돈이 찾아와도 절대로 굴하지 않는 한 사람에 대한 책.
혼돈에 빠진 저자가 혼돈을 이겨내는 비결을 찾기 위해 한 사람을 세밀하게 해부한 책.
바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다.
이 책은 이전에 한번 읽은 적이 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이었으나 그때는 분류학, 진화론, 분기학과 우생학에 대한 과학 교양서의 형태로 읽혔다.
이번에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어떻게 혼돈을 이겨냈었는지, 거기서 찾은 작가의 교훈은 무엇이었는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 책에서 조던은 효과적으로 혼돈을 이겨내는 사람이었으나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면이 있었고,
작가는 이를 통해 혼돈을 대하는 ‘옳은 방법’ 을 떠올렸었던 것 같다는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도 그 ‘옳은 방법’이 절실했다.
작가가 조던을 다각도로 뜯어보았듯이 나는 이 책을 아주 꼼꼼히 뜯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미 표지에서부터 이 책은 과학 교양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제를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 하는 시기의 문제다
작가는 어렸을때부터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자랐다.
과학자인 아버지는 ‘열역학 제2법칙’ 을 기반으로 이 세계의 주인이자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유일한 진리는 ‘혼돈’ 임을 작가에게 가르쳤다.
이러한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는 신의 의도도, 정해진 목적도 없으며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는 세계의 관점에서 그 어떤 의미도 없다.
심지어 너 자신도 중요하지 않아. 어쩌면 개미가 지구에게는 약간 더 중요할지도?
작가의 아버지에게 이는 불필요한 구속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도덕률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하고 싶은 대로 살기)를 선사했지만, 어린 작가에게는 삶의 의미를 빼앗아갔다.
과학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차가운 현실을 알려준다.
- (열역학) 자연은 질서를 싫어한다.
- (천체물리) 우주는 거대하며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다.
- (진화론)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과학은 계속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길 수 있도록 지탱해주던 개념들을 부수고 있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내가 볼때 지구상 존재했던 그 어떤 개념이나 이론 보다도 가장 강력하게 인간성을 위협하는 것은 ChatGPT 로 대표되는 LLM이다. LLM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농락하려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으며 그 어떤 때보다 빠른 속도로 혼돈에 빠지고 있다.
결국 과학적 세계관은 사람을 염세주의에 빠지게 만들기 쉽다.
이 세계는 다시 종교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중요성이라는 따뜻한 느낌은 쉽게 놓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도 특유의 낙천성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혼돈을 이겨낸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조던은 본인이 수년간 수집한 모식표본이 지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서 무의미로 돌아가려던 순간에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표본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말그대로 발악했다.
이 사건 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는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같은 커다란 혼돈이 여러번 들이닥쳤지만 그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인상깊게 본 작가는 혼돈에 굴하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의 삶을 계속해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간다.
그러다 그가 절대로 우상으로 삼을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본인과 대립하던 특정 인물을 살해했다는 정황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에 우생학이 널리 퍼지도록 인생을 바친 사람이고, 많은 이들을 부적격자로 낙인찍어 불임화 시술을 받도록 한 장본인이다.
조던은 작가의 아버지처럼 '혼돈'의 존재를 인지하고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는 이성적인 인물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결과물인 우생학에 앞장섰다는 점이 모순되었기 때문에 작가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다 마침내 이 모순을 설명하는 하나의 문장을 조던이 혼돈 속에 허우적대던 바로 그 시점에 직접 작성한 에세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조던이 혼돈을 헤쳐나가는 비법은 과학적 세계관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조던은 스스로도 매우 강조했던 이 엄중한 규칙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과학자인 조던 조차도 거대한 혼돈 앞에서 완전히 절망에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과학적 세계관을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작가는 자기 기만의 심리적 효과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였고, 긍정적 착각, 그릿, 선한 거짓말과 같은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조던이 스스로 낙천성의 방패라고 부르던 것이 긍정적 착각의 결과라는 것도 확인했다.
긍정적 착각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뚝심있게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특징은 확실히 적당한 정도의 긍정적 착각이 좋은 영양분이 된다는 무수히 많은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것들을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착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혼돈을 마주쳤을때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더 높은 곳에서 추락하고 빈사상태에 이르거나, 혼돈을 집어삼키고 악마가 된다.
그리고 혼돈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자연의 뜻에 맡긴 채 그저 혼돈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는 걸까?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종교인들처럼 내 삶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수동적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것은 비약일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믿고 명확한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목표만을 보고 달리는 것 보다는 그 시야 주변에 훨씬 더 좋은 것이 많다고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목표를 향하되 그 주변 시야를 놓치지 않을 것, 의미를 부여하되 맹목적이지 않을 것.
이것이 내가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떠올린 최선의 절충이다.
특히 맹목성, 즉 의심하지 않는 태도는 조던을 희대의 괴물로 만든 원인이자 작가가 확실히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작가는 ‘이름’ 이라는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살펴본다.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는데, 이는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인간은 이름을 부여하면서 세상을 조각해내는데 늘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 속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늘 신중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는 단어를 신중하게 다루는 것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름은 자연이라는 혼돈 속에 인간이 편의를 위해 부여한 질서와도 같다.
그리고 그 질서는 어떠한 의도를 담고 있거나, 직관적으로 인지되는 어떠한 범주를 만든다.
이를 통해 이름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왜곡시킨다.
조던은 단어를 신중히 살피지 않는 자, 의심하지 않고 직관과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본 자는 어떤 모습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던은 우생학을 통해 세상을 왜곡했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기질에 도덕적 우열이 있다고 선언하였고,
거의 모든 기질이 유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우수한 기질만 선택적으로 유전시키면 더 우수한 인간 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조던은 자연의 사다리 를 통해 세상을 왜곡했다.
저열한 종부터 가장 우수한 종인 인간까지 이어지는 진화의 계층이 있다고 가정했으며,
더 나은 성질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종은 퇴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던은 모든 인생을 바쳐 어류를 분류하고 이름을 부여했지만
학술적으로 보면 어류라는 유의미한 분류 자체가 없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낸 분기학자들의 태도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조던 같은 분류학자들은 직관에 의존하여 겉으로 보이는 특징에 주목했다.
물 속에 사는 녀석들은 전부 일단 전부 하나의 범주에 넣어버리는 식이다.
그러나 분기학자들은 직관을 철저히 배제하고 단순한 규칙에 따라 가장 핵심적이고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냈다.
폐어는 비슷하게 생긴 송어보다 폐로 호흡하는 송아지와 더 가깝다.
작가는 우리에게 분기학자들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범주나 직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의심해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도덕이나 정신에 대한 가치는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지금 당신이 품고 있는 희망이나 꿈 까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유독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을 나열하는 부분이다.
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우생학에 의해 부적격자로 판정되어 수용소에서 가두어졌고, 불임 시술을 받게된 애나의 반응이다.
애나는 물고기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나는 이 문장이 슬프면서 무섭기도 했다.
물고기들끼리는 물에 산다는 점 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물고기로 퉁쳐서 불릴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왜곡된 개념으로 의심없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은 얼마나 또 많을까?
의심없이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허상이지는 않을까?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내가 이 책에게서 받은 가장 큰 감동은 과학적 세계관을 비관과 허무로 가득한 차가운 곳에서 사랑이 넘치는 따듯한 곳으로 바꿔주었다는 점이다.
작가를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 최초의 문장이자 혼돈이 주인인 세계에서 명심해야할 사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아.
이 냉혹한 선언을 작가는 무너뜨렸다.
민들레 법칙. 민들레는 누군가에게는 잡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약초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초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자연에 편하려고 그어놓은 선들 너머에는 우리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
무작위함과 변이로 펼쳐진 복잡다단한 생명의 전체 조직과 서로를 지탱하는 그물망의 힘.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구요!
작가는 '이 세계'에 있었던 사랑 가득한 '다른 세계'를 기어코 발견해내고 말았다.
과학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않고도 따뜻한 세상을 찾아냈다.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문단이 있다.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혼돈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또다른 멋지고 행복한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 수 있다.
이 책을 다시 읽고 난 뒤에도 난 아직 길을 찾지 못했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지,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책은 말해주지 않는다.
왜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 삶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음,, ‘왜’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또렷하게 ‘의미는 없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사실은 여전히 덤덤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나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두렵지는 않은 것 같다.
인생의 의미가 없더라도 나는 중요한 존재이다. 이것은 자기 암시가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이 가져다준 선물같은 문장이다.
또한 나를 온전히 두 발로 버티고 서있게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절대로 내가 홀로 혼돈 속에서 헤매이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를 쉬이 여기지 않고 이 세계를 정성껏 들여다보며 살아가다보면,
내가 아직 그려본 적은 없지만, 분명 내가 원하는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20대의 밤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보내고, 30대의 첫 아침을 기다리는 동안 이 독후감을 적게 되었다.
혼돈 속에서 불안에 떨며 한발한발 걸어온 지난 30년이었다.
남은 인생은, 여전히 혼돈 속이지만, 여유와 사랑을 가득 담고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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